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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나의 아저씨> 페미니즘 리뷰: Gender? Sex!

드라마 비평리뷰

by 신비의 속삭임 2019. 6. 24.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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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글은 작성자의 개인적인 견해를 담은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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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작품 전체에 대한 페미니즘적 견해에서 본 리뷰입니다. 반드시 이 점을 명시하고 글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리뷰에 사용된 모든 사진의 출처는 원 제공자에게 있습니다.

 

   논란의 시작

 

 2018년 가수 아이유와 배우 이선균이 주연으로 출현한 tvn 방영드라마 <나의 아저씨>는 사채업자 광일(이하 배우 장기용)이 지안(이하 가수 아이유)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이 데이트 폭력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한 기사에서부터 논란의 불씨를 맞게 되었다. 처음에 단순히 한 장면만의 문제라고 여겨졌던 논란은, 점차 일부 페미니스트들의 발언을 통해 해당 드라마의 전체 스토리의 전개나 등장인물들의 성격, 심지어 더 나아가 제작진들의 가치관까지도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으로 번지게 되었다. 인터넷 상에서는 해당 드라마에 대한 온갖 갑론을박이 펼쳐졌으며,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이 논란으로 인해 해당 드라마를 전체회의를 통해 재상정하기도 하였다. 

논란이 된 해당 폭행장면의 일부이다. 체구가 작은 지안이 광일에게 과도한 폭력을 당하는 장면을 여과없이 TV에 송신하였다는 점에 대해서도 비판을 받은 바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논란도 잠시, <나의 아저씨>에서 이지안 역을 맡은 가수 아이유가 그해 연말 방송 시상식에서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면서, 극에 대한 논란의 불씨는 애속하게도 겉핥기식으로 논의되고 꺼지기에 그치고 말았다. 최종적으로, 이 논란은 '익명에 숨겨진 누군가의 불편한 속마음이 표현된 것' 정도로 마무리 되는 듯 했다.

 

백상예술대상에서 드라마 <나의 아저씨>로 극본상을 받은 박해영 작가가 수상소감을 말하고 있다.
가수 아이유가 드라마 <나의 아저씨>로 여자 최우수연기상 중편드라마 부분을 수상한 소감을 말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 표면적으로만 바라본다면, 누군가는 2018년 당시 열풍이었던 '미투 운동'에 휩쓸린 분위기 탓에 드라마가 과도한 비난을 받은 것이라는 주장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이 문제가 대두된 모든 배경과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까?

드라마 <나의 아저씨>가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담은 드라마’라고 표현되는 반면, 다른 이들에게는 ‘최악의 드라마’라고 언급되는 논쟁의 바탕에는 결국 페미니즘이 있다. 극 중 사채업자가 이지안을 폭행하는 장면과 이지안과 박동훈의 나이 차, 드라마의 전체적인 스토리 등에 페미니즘의 총알이 날아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페미니즘이란 대체 무엇일까?

 

 

   페미니즘이란?

 

 

 페미니즘(여성주의)은 기존의 ‘여성성’으로 명시되는 것들에서 탈출하자는 뜻에서 비롯된 용어이다. ‘여성성’으로 명시되는 것들에는 다양한 것이 포함된다. 신체적 여성성에는 실용성은 없고, 화려하게 치장된 ‘예쁨’만을 추구하는 화장품, 치마, 긴 머리, 지나치게 치렁치렁한 귀걸이 등이 해당되며, 사회적 여성성에는 남성의 구원만을 기다리는 자세, 소극적인 삶의 태도 등이 해당된다. 이렇게 여성의 ‘주체적인 삶’을 옥죄는 쇠사슬들을 끊자는 의미에서 ‘페미니즘 운동’은 시작되었다. 한 마디로, 페미니즘은 ‘사회적으로 여성으로서 갖춰야 하는 불필요한 탈(Gender)’을 벗고, 선입견을 가진 성별로 규정되지 않는 상태(Sex)에서 ‘진짜 내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정체성에 대해 찾아가는 것을 지향한다.

 

사회적으로 규정된 미에서 벗어나는 것, 그것이 페미니즘이다.
여성에게 필요한 것은 백마탄 왕자님이 아니라, 본인의 일을 할 수 있는 힘과 도구.

 논란의 핵심은 드라마 <나의 아저씨>가 페미니스트의 입장에서 비판할 수 밖에 없는 내용을 담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어떻게 페미니즘 드라마라고 언급되는 몇몇의 드라마들과 <나의 아저씨>의 차별성을 만드는지 궁금할 것이다. 신체적 여성성보다 사회적 여성성에 초점을 두고 논의를 해보면, 그 핵심은 위에서 언급한 주체성남성의 구원서사 탈피라는 두 가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따라서, ‘페미니즘 드라마로 언급되는 작품들과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이 두 가지 요소를 통해 비교하면서, 이에 대한 차이점을 중심으로 논란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1. 주체성: 선택지의 여부

 

 

 우선 <나의 아저씨>의 대표적인 여성캐릭터인 ‘지안’에 대해 살펴보자.

극 중 지안의 삶은 대한민국 하층민의 극단적인 삶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 가난하다는 것은 단순히 물질적으로 가난하다는 것을 뜻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자본주의 사회에서 선택할 수 있는 기회와 선택지가 별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설국열차>의 꼬리 칸 사람들이 열차 내에서 계속 바퀴벌레로 만든 양갱을 먹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그들의 선택지가 그것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현실이었기에, 그들은 혁명을 선택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안은 혁명보다는 체념을 선택한다. 물질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생길 수밖에 없었던 사채업자의 폭행과 할머니를 요양원에서 카트에 실어 데려오는 상황에서도 지안은 크게 표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 지안에게 태어나서 주어진 환경이 극적이었기 때문에, 그녀에게는 혁명 아니면 체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선택지 단 하나 뿐이었다. 동훈과 접점이 생기기 시작하는 도준영과의 거래 또한 그 시작은 지안의 빚을 갚기 위함이 상당한 부분을 차지했다.

 

 

   ‘주어진 것’과 ‘선택하는 것’의 차이

 

 

 하지만, 모든 드라마가 하층민들의 삶을 타율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는 그런 캐릭터를 통해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자율적인 삶’인 경우도 있다.

<밀회>의 남자주인공인 이선재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는 지안처럼 극단적인 상황에 몰린 20세의 젊은 하층민 청년이다. 그는 일용직을 오가며 생계를 유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중 내에서 그는 피아노를 통해 성공하고 싶다는 내적 욕망을 가지고 있었으며, 피아노를 통해 그와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온 오혜원 실장을 만나게 된다. 그는 그녀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표출하겠다는 의지 또한 지니고 있었다.

오혜원 실장(이하 배우 김희애)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숨기지 않는 이선재(이하 배우 유아인)
선재는 그녀와의 첫 만남에서 진지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피아노를 연주한다.

 

선택지가 별로 주어지지 않는 환경에서도 ‘자신이 선택하는 것’을 찾아나가는 그의 삶과, 별 다른 욕망 없이 ‘주어진 것’만을 받아들이는 지안의 삶은 상당히 대조적으로 그려진다.

인상 깊은 점은, <밀회>와 <나의 아저씨>는 동일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이다.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을 표현하는 데, 성별만 바뀌었다고 해서 성격과 작품의 의도가 이렇게 바뀔 수 있을까?

 

 

    페미니즘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여성의 주체성: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

 

 

 ‘페미니즘’적 성향을 가진 여성캐릭터와 지안을 비교해 보더라도 결과는 같다. ‘이선재’와 마찬가지로, 동일하게 2018년에 방영된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에서 여성 판사 ‘박차오름’은 선택지가 없어 보이는 상황들에서도, 항상 자신이 옳다고 추구하는 길을 찾아가려고 한다. 부장의 호통도, 동료 판사의 충고도 그녀를 막을 순 없었다. 그녀는 힘겹게 돌아다니며 동료 여성판사의 부당한 성추행에 대한 서명을 받기도 하고, 여성은 일반적으로 법원에서 정숙한 복장을 하고 다녀야 한다는 선택지를 스스로 없애버리기도 한다.

전반적으로, 극 중에서 박차오름은 자신이 ‘주어진 것’만 선택해야 하는 현실에 상당한 불만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재판을 하는 내내 법원의 시스템이라는 주어진 상황에 늘 의문을 가지고 있다. “판사는 기계입니까?”라는 말을 당당히 하면서, 자신을 늘 혼내는 부장에게 ‘티끌 하나 없는 사람만 상대방의 잘못을 물을 수 있냐’라는 말로 응답하기도 한다. 그녀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만 선택’한다.

극 중에서 제일 약자에 대한 공감능력이 뛰어나며, 법원의 체계에 의구심을 가지는 박차오름 판사.

 

 

   2. 남성의 구원서사: 동화 <신데렐라>의 환상

 

 

 잠시 우리가 한 가지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그 부분은 <나의 아저씨>의 결말 부분이다. 지안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지안의 할머니 장례식장은 초창기 거의 텅 비어있었다. 하지만, 장례식장을 휑하게 비워두면 좋지 않다는 동훈의 의견에 따라, 동훈의 주변 사람들이 장례식장을 채우게 된다. 심지어, 동훈의 형이 장례식 비용을 지불해주기도 한다.

문제는 여기서 ‘동훈과 관련된 것’을 제외하면 지안이 처한 상황은 여전히 막막하고, 외롭다는 것이다. 동훈의 주변 사람들 중 지안의 심정을 알아주고, 감정을 교류하는 것으로 묘사된 사람은 동훈의 친구인 정희 하나뿐이었다.

이는 동화 <신데렐라>로 대표되는 ‘남성의 전형적인 구원서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남자가 위기에 빠진 여성을 구해주면서 해당 여성과 좋은 관계로 발전해 나간다는 남성의 구원서사는 <나의 아저씨>도 적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극의 내용은 지안이 새로운 직장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동훈 또한 아내와 화해하고 성공적으로 스타트업의 대표가 되는 것으로 막을 내렸지만, 드라마와 달리 현실은 인위적으로 결말을 정할 수 없다. ‘현실의 이지안’들에게, 박동훈이라는 ‘좋은 어른’을 만나 구원받는 삶의 결말은 ‘유토피아’에 가깝다.

 

 

   페미니즘 드라마에 그려지는 '남성 중심 구원서사'의 탈피: 드라마 <마녀의 법정>

 

 

 이와 달리, 또 다른 페미니즘 드라마 <마녀의 법정>에는 남성의 구원서사에 관심이 있기보다, 오히려 본인이 출세욕에 넘쳐있는 여성 검사 ‘마이듬’이 나온다. 그녀는 자신의 문제는 스스로 해결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신데렐라의 왕자님’은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을 그녀는 이미 알고 있다.

극 중에서 '독종 마녀 에이스 검사'라고 불리는 마이듬. 

 

그렇기에, 그녀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독하고, 이기적이여야 한다. 30대의 비혼 여성이자, 성공한 커리어 우먼인 ‘마이듬’은 어리버리하지 않고, 실수를 잘 하지 않으며, ‘희생’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드는 인물이다. 이런 성향이 지나쳤기 때문에, 그녀는 여성아동범죄 전담부로 좌천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이후 그녀의 세상에 ‘남성의 구원’ 대신 존재하는 것은 각종 성범죄에 관한 사건들뿐이다. 사실, 그녀는 자신이 언제 그 사건들의 피해자가 될지 몰라 조금 무섭기도, 가끔은 몸을 떨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는 백마 탄 왕자님과의 연애 대신 여러 사건들을 전담하면서 스스로 한 걸음 더 성장해나가는 길을 택한다.

 

 결국, 앞서 살펴본 내용에 따르면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 대한 페미니스트들의 비판은 어느 정도 공감될 수 있는 선상에 놓인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무작정 작품에 출현한 배우 전체와 스태프, 방송국을 헐뜯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다.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무기삼아 다양한 웹사이트에 숨어, 16회나 되는 거대한 작품을 완성한 그들에게 인신공격과 같은 비난을 내뱉는 것은 상당히 무례한 일이다.

하지만, 전적으로 페미니즘적 견해에서 해당 예술 작품을 바라본다면, 그에 대한 도덕적 비판을 피해갈 수는 없어 보인다. 

 

 혹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런 식으로 작품을 비판한다면, 대체 한국에서 비난받지 않을 작품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의 말이 맞다. 이러한 주체성남성의 구원서사에 관한 논란은 비단 <나의 아저씨>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대중매체 속 여성의 Gender 

 

 

  <나의 아저씨>의 ‘지안’과 비슷한 여성성을 지닌 캐릭터는 여러 대중매체에 존재한다. 드라마의 경우를 살펴보더라도, 대중몰이에 성공하고, 호평 받으며 큰 성과를 거둔 <도깨비>, <상속자들>, <알함브라의 궁전>, <김비서가 왜 그럴까>, <치즈 인더 트랩> 등의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전부 2010년대 방영된 드라마에 해당하는 작품들이다)  위 드라마에서, 여성캐릭터들은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진다.

이들은 위에서 언급한 ‘페미니즘 드라마들’과 달리 남성캐릭터에 비해 주체적으로 그려지지 못하고, 무능력하며, 결과적으로 남성의 구원서사의 주인공이 되는 결말을 맞이한다.

 

<도깨비>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고3인 지은탁은 도깨비 신부로서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며, 운명적으로 도깨비를 만나기만을 기다린다. 그리고, 그렇게 도깨비를 만나 그와 동거를 하게 되면서 그에게 가난하고 불행하다고 느꼈던 자신의 인생을 구원받게 된다. 반면에, 극 중 자신의 검을 뽑아야 하는 상황을 제외하고 도깨비 김 신은 굉장한 능력자로 묘사되며, 은탁을 다시 만나기 위해 돌아오는 등의 주체적인 모습도 보인다.

<상속자들>은 이런 여성상을 전면에 내세워 홍보한 작품이다. 차은상이라는 가난한 여고생이 김탄이라는 왕자님을 만나 자신의 운명을 구원받는 이야기에는 ‘전형적인 여성향 드라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지은탁(이하 배우 김고은)은 도깨비 김신(이하 배우 공유)의 정체를 안 이후, 그에게 사랑 고백을 한다.
일명 '신데렐라' 차은상의 이야기를 담고있는 드라마 <상속자들>

 

 

    여성의 Gender에서 벗어나, Sex로

 

 <나의 아저씨>에 대한 페미니즘적 비난에는 폭력적인 장면들과 설정에 대한 비난들도 섞여 있지만, 사실 그것보다 더 깊게 논의되어야 하는 것은 ‘사회적 여성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지안’이다.

현실적인 결함들을 감추고, 인물들을 현실에서 탈출시켜줄 뿐인 ‘힐링’을 위해서 지안의 삶은 꼭 그렇게까지 비극적이었어야 하며, 동훈이라는 어른을 만나기 전까지 모든 것을 체념하고 살았어야 했을까?

어쩌면 단순해 보이는 캐릭터의 설정 하나일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이런 대중매체 속 ‘여성의 Gender’가 무엇을 표방하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할 필요성이 있다. 오래 전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는 현재 진행형이다.

이제는 이런 ‘Gender’에서 벗어나 ‘Sex’로서 살아가야 할 때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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