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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parasite)> 리뷰: 보이지 않는 '선'

영화 비평리뷰

by 신비의 속삭임 2019. 9. 12.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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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글은 작성자의 개인적인 견해를 담은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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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화 <기생충>의 내용 일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지 않으신 분들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리뷰에 사용된 모든 사진의 출처는 원 제공자에게 있습니다.

 

 

 

    최근 사회의 동향과 영화 흥행의 이유

 

 

 "더이상 개천에서 용은 나오지 않는다."

 

사람들이 고위층 자녀의 입시비리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내뱉는 말이다.

사정이 어렵던 사람이 '시험'이나 여러 다른 기회를 통하여 그 사정을 극복하고 성공하는 인물로 거듭나는데 주로 쓰였던 용어. '개천에서도 용이 나온다.'

우리의 현실은 이제 이러한 웃픈 말조차 더 이상 나오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

 

재벌가의 경영권 세습계승은 예전부터 기정사실화되어온 것이며,

명문대를 진학하는 학생들의 대부분은 소득분위 9-10분위의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집안 자녀들이다.

일명 대한민국 3대 명문대라고 손꼽히는 'SKY' 재학생 중 고소득층 비중은 전국 대학의 고소득층 비중에 비해 2배 가까이 높다.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한국장학재단 ‘2018년 1학기, 서울·고려·연세대 재학생 소득분위 산출 현황’ 자료. 출처: 오마이뉴스

 

 서울대 대학생활문화원이 매년 시행하는 '신입생특성조사' 자료를 살펴보면, 2000년대 이후 최근까지 서울대 신입생 아버지의 직업 비율은 의사‧변호사‧판검사‧연구원‧교수‧교사 등 전문직이 25~30%를 차지했다. 경영주‧대기업 간부‧고급 공무원‧사회단체 간부 등 경영관리직도 15~20%였다. 입학생 10명 중 4~5명의 아버지가 이른바 현대사회의 '상층' 지위에 있는 셈이다.

 

작중 기우가 가고싶었던 명문대는 연세대학교였다. 하지만, 기우는 결국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사문서 위조를 통해 과외선생을 하게 된다. 

사문서 위조는 명백한 범죄행위이지만, 우리는 기우의 이 행위 이면에 숨겨진 사회의 현실을 먼저 보아야 한다.

기우가 범죄를 저질러서라도 대학교에 진학하고 싶었던 욕망을. 그리고 취업하고 싶었던 노력을.

 

 

돈이라도 많이 벌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평범한 이들에게 인생은 그리 호락호락하게 행복을 쥐어주지 않는다.

사업으로 무언가를 벤치마킹하여 성공하려고 해도, 투자금이 있어야 시작할 수 있는 시대.

 

부자는 자본소득을 통해 가만히 앉아서 부를 더 늘려가고, 빈자는 근로소득을 통해 간신히 생계를 이어가는 

현대사회의 양극화 현상에 대한 문제점은 끊임없이 거론되어져 왔다.

 

영화 <기생충>으로 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좌. 봉준호 감독, 우. 배우 송강호

 영화 <기생충>은 이러한 '현대사회의 모든 문제점'을 한 편의 영화에서 담아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칸 영화제의 엄청난 기립박수를 자아냈으며, 세계적으로 공통되는 빈부격차 현상을 재조명하였다는 점에서 칸 최고 명예의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감독 봉준호의 전작 <설국열차>와 비슷한 문제를 다루지만, 전하려는 메세지와 그 틀에는 큰 차이가 있다.

<설국열차>에서, 봉준호는 변해버린 세계와 한 줄기의 희망을 이야기하였다.

수평적인 기차 안에서 자본소득을 통해 나뉘어진 칸과, 체제를 뒤엎으면 상황이 전환될 수 있다는 희망.

마지막에 살아남은 어린 흑인 소년과 젊은 황인 여성은 그런 희망을 상징하는 요소이다.

그리고 엔딩 신에 등장한 북극곰을 통해, 그 희망을 확정시켰다.

 

영화 <설국열차>에서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아이들.

 

 하지만, <기생충>은 조금 다르다. 이번에 봉준호는 '희망'과 '혁명'을 이야기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봉준호는 가감없이, 날것을 온전히 드러내는 것을 이번 영화의 목표로 삼았다.

보다 많은 이들이 영화를 보고 자신의 현실을 되돌아볼 수 있도록.

더 이상 우리 사회가 '보이지 않는 선'에 가로막힌 채, 그로 인해 벌어지는 온갖 문제들을 회피하지 않도록.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기생충은 흥행에 성공하였다.

봉준호 감독의 의도는 절반은 먹힌 셈이다.

 

 

 

 

   영화 내 상징적 요소들에 대한 분석

 

 

 영화 <기생충> 내에는 생각보다 많은 메타포들이 존재한다.

이는 영화의 해석을 더욱 풍부하게 해주며, 관객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영화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소품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 중에서 핵심적인 다음의 몇 가지 요소들에 대해 해석해보면, 감독 봉준호가 전하고 싶었던 메세지인 

'보이지 않는 선'에 대해 더 명확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요소들은 현대사회에서 빈자와 부자를 나누는 '보이지 않는 선'이 무엇인지에 대한 관객의 이해를 돕는 역할을 한다.

 

 

 

1. 

 

 계단: 현대사회에 새롭게 나타난 계급의 벽.

 

 기생충을 관람한 관객들이라면 누구나 쉽게 인식할 수 있는 요소이다.

영화 내에서, 감독은 계단=계급의 벽이라는 사실을 대놓고 관객들에게 명시하고 있다. 

기우(이하 배우 최우식)가 고액과외 면접을 가기 위해 올라가는 장면.

글로벌 IT기업의 사장이자 저택의 주인인 동훈(이하 배우 이선균)이 처음 등장하며 계단을 올라가는 장면.

연교(이하 배우 조여정)가 강아지를 데리고 계단을 올라가는 장면 등

영화 내 여러 신들에서는 등장인물들이 계단을 오르고, 내려가는 장면들이 수없이 클로즈업되어 나온다.

 

작중 초반, 과외면접을 위해 처음으로 계단을 올라가 저택으로 향하는 기우(이하 배우 최우식)의 모습.

 

이는 감독이 '보이지 않는 계급'을 형상화하기 위해 표현한 장치고 볼 수 있다.

현대사회는 자본주의 체계를 지니고 있고, 계단은 그 체제가 고착화된 현대사회의 단면을 충실히 묘사하고 있다.

극 중 박사장은 계단을 계속 올라가기만 할 뿐, 절대로 내려오지 않는다는 점.

그의 아내인 연교 또한 계단을 잠시 내려올 때도 가정부에게 무엇인가를 지시하기 위해 잠시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간다는 점 등이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라고 볼 수 있다.

고등학생인 다혜와 어린 다솜, 즉 그들의 자식들만이 유일하게 이런 허물없이 계단을 올라갔다가 내려가는 인물들에 해당한다.

이는 아직 계급에 대한 정확한 의식이 없는 미성년자들의 모습을 반영한 것이다.

 

계단을 내려와, 부엌에서의 대화를 몰래 엿듣는 다혜(이하 배우 정지소)의 모습.

 실제로, 어린 학생들이 계급에 대해서 체감하는 정도는 사회에 나가 직장생활을 하는 어른들에 비해 추상적인 경향이 있다. 

TV에서 불우한 이웃을 돕는 광고를 보았을 때 , '저 아이가 불쌍하다.' 라던지, '아무것도 안하고 병원에 입원해있으면 편하겠다.' 등의 반응을 하는 어린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이 존재한다.

상류층 가족과 반대로, 하류층 가족을 대표하는 기우네 가족은 모두 계급을 자유롭게 오르내린다.

지만, 그 이후에 결국 엄청난 길이의 계단을 내려가는 상황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 장면 이후, 그들이 계단을 올라오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계단은 끊임없이 내려간다. 반지하 아래에는 지하가 있다. 

반대로, 계단은 끊임없이 올라가기도 한다.

 

 

계단은 그 자체로 존재하지만, 그 계단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계속 변한다는 점에는

계급의 구성원들은 바뀔 수 있지만, 이미 공고해진 계급의 벽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다는 사회적 암시가 깔려있다.

 

 

 

2.

 

 인디언 복장: 부자들의 위선적인 행위.

 

 영화를 단편적으로 바라본다면, 기생충인 기우네 가족이 아메리카 대륙을 침략해온 미국인, 박사장네 가족이 그와 대비되는 원주민인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박사장네 막내 아들의 행위가 단순히 '미국인들이 만든 장난감 천막을 가지고 노는' 놀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으면, 이후 생일파티 장면에서는 박사장 가족들을 과연 선량한 원주민이라고 볼 수 있는가에 대한 상당한 의구심을 품게 될 것이다. 

 

원주민 놀이를 즐겨하고, 컵스카우트에 흠뻑 취해있는 집안의 막내 다솜(이하 배우 정현준).

 

이는 오히려, 본래부터 이 집의 가정부였던 문광이 원주민이고, 박사장네 가족이 그런 문광의 거주지를 침략해온 미국인이었던 것이 아닌가 라는 암시를 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아마 "누가" 이 영화를 관람하느냐에 따라, 이 해석은 달라질 수 있다.

 

 

 

3. 

 

 모르스 부호: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내는 약자들의 처절한 생존 메세지.

 

 

 영화 내에서, 비현실적으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지하실 안에 있는 센서등이다. 

이 센서등은 계단의 위를 비추는 전등의 센서 스위치인데, 근세(이하 배우 박명훈)는 이 스위치를 통해 모르스 부호로 퇴근 후 집에 오는 박사장에게 감사의 인사를 표한다.

하지만, 막상 박사장은 근세가 지하실에서 그러한 행동을 한다는 사실도,

계단 위의 센서등이 지나치게 깜박인다는 사실도 쉽게 인지하지 못한다.

단지 연교만이 "센서등이 고장난건가..?"하는 대사를 하며 고개를 갸우뚱할 뿐이었다.

 

깜박이는 계단 위의 센서등에는 처절한 지하의 몸부림이 담겨있다. 

 

모르스 부호는 이러한 자본주의 체계의 새로운 계급체제가 고착화되면서,

세계 곳곳에서 과도한 노동과 저임금으로 삶에서 상당한 고통을 받고 있는 최약층의 사람들이 상류층이나, 중상류층의 사람들에게 보내는 메세지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영화 내의 박사장네 가족들이 그러했듯이, 계단 위에 있는 사람들은 이런 구조의 메시지를 잘 보지 못하며 접하더라도 그 의미를 잘 해석하지 못한다.

혹여나 이를 눈치 채더라도, 이에 대해 심각한 고찰을 하지 않고 본연의 일상에 집중하는 등장인물들의 모습

(예를 들어, 컵스카우트에 가입하여 모르스 부호를 알고 있던 다솜은 이 부호를 다 해석하기도 전에 잠에 들어 버린다.)은 현대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대부분 사람들의 모습과 닮아있다.

 

대규모 파업을 하겠다고 대대적으로 선언하지 않는 이상, 버스기사가 받는 부당한 대우에 대해 알 사람은 몇 없을 것이다비록 이러한 사실을 알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시 분노하고 그 수준에 그친다.

 

그들에게 '버스기사의 목숨을 건 파업'은 '성가시게 돈 몇 푼 더 내야하는 뉴스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누군가에겐 생계가 끊길만한 심각한 일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이해하지 못할 시위라는 점은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을 더 씁쓸하게 만드는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4.

 

 리스펙! : 존경인가, 세뇌인가?

 

 영화 내에서 제일 소름돋는 대사를 꼽자면, 근세가 하는 이 대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날마다 박사장에게 감사함을 표현하고, 더 나아가 죽기 직전까지 그에게 존경한다는 말을 하는 근세.

 

 

어쩌면 상당히 비현실적으로 그려진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러한 현상은 우리 주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들이 자신이 면접을 보는 회사의 사장을 신격화하는 경우.

그들의 사업 번창 시나리오와 일대기를 외우거나, 대기업의 경우 더 나아가 회사의 역사 자체를 외우고 시험보는 경우도 존재한다.

현대사회에서 제일 잘 팔리는 책은 자기계발서도, 유명한 소설책도 아니다.

'경제적으로' 성공한 인물에 대한 자서전은 그 누구에게나 그 책을 읽어볼만한 흥미를 유발하게 한다.

 

현대사회에서 기업의 오너에 관한 책이 불티나게 팔리고, 다수의 대중이 그(혹은 그녀)를 존경하는 상황이지만, 오너가 실질적으로 회사의 번창에 기여하는 부분은 크게 많지 않다.

일부 회사의 경우, 오너가 아닌 전문 경영인이 회사를 경영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결국 회사를 성장시키는 것은 각종 성과금과 포상금의 노예가 되어 열심히 성과를 내는

한 명 한 명의 노동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은 그들의 부당한 배분방식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여러가지 이유로 상류층과 자본가들을 존경한다.

 

사실, 자본가와 노동가들은 다른 관점에서 보면 서로 '공생'을 꾀해야 하는 관계이다. 

영화 내에서 박사장이 언급하였듯, 그들의 집에서 일하는 운전기사, 가정교사, 가정부 등의 고용인들 중 단 한 명이라도 없으면 그들은 일상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그리고 비록 정당하지 못한 방식으로 자리를 꿰찼다고는 하나, 기우네 가족들 또한 이러한 역할을 충실히 해내며 박사장네 가족의 일상적인 생활을 유지하는 것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기우네 가족은 그들에게 '기생하는 존재'만으로 묘사되며, 그들도 자신들이 그런 바퀴벌레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리스펙!"이라는 근세의 강력하고 충격적인 한 마디는 이런 기이한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5.

 

 냄새: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계단과 마찬가지로, 계급의 벽을 나타낸다.

 

 우리의 눈에 직접적으로 명시되지 않는 현대사회의 계급을 구별해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말할 수 있다.

기택네 가족도 겉모습과 속마음까지 숨기면서 상류층에 기생할 수 있었지만, 결국 그들에게서 나는 하층민의 냄새, 즉 반지하 냄새만은 쉽사리 숨기지 못했다. 결국, 냄새는 박사장이 중시한 그 계급의 '선'을 넘어버린 요인이 되어버린다.

 

기택 앞에서는 얘기하지 않은 불쾌함에 대해 아내에게 "냄새가 난다"며 말하는 박동훈 사장(이하 배우 이선균).

 

하지만,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냄새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강아지들은 모든 등장인물들에게 차별없이 다가왔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는 사실 동일한 '인격체'이고, '선'은 인위적인 구별요소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중적인 사실을 내포하고 있다.

 

 

 

 

6.

 

 그림: 상류층의 불안한 내면심리가 투영된 존재.

 

 가정교사로 면접을 보러 온 첫 날, 기우가 저택의 부엌에서 처음 본 그림은 언뜻 봐도 굉장히 상징적인 의미를 담은 그림이다.

 

문제의 그림. 영화 자체를 상징하고 있다.

 

처음에 연교는 자신의 아들인 다솜이 그린 이 그림이 자화상이라고 믿고 있었지만, 사실 그 그림은 지하실에 있는 남자를 그린 몽타주였다. 

다솜이는 그 이후에 인디언 분장을 하며 집안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게 되는 데, 이는 상류층의 불안한 내면심리가 표현된 장치라고 볼 수 있다.

자본주의에서의 계급이 고착화된 현대사회이기는 하지만, 이들에게는 내려가야 할 계단이 아주 많다. 

그리고 그들만의 성을 쌓아 생계를 꾸려나가도, 부정의한 방법을 통해 기생충들(낮은 계급의 사람들)은 계속 들어오게 된다. 기우네 가족이 부잣집으로 잠입하여 점차 번식하는 모습은 흡사 '트로이 목마'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집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다솜이지만, 그는 무의식에서라도 이들을 경계하기 위해 이러한 그림을 그리고, 경각심을 느끼도록 가족들이 자주 모이는 부엌에 걸어두기를 소망한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 <기생충>은 새롭게 등장한 계급의 벽을 영상매체를 통해 형상화하고 있다.

부자는 점점 높은 건물을 쌓아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빈자는 점점 그 영역 밖으로 소외되어 아래로, 더 아래로 내려가는 모습은 흡사 신분제가 남아있었던 중세시대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명백하게 드러나는 두 집의 극명한 대비가 이 영화의 볼거리를 더욱 풍부하게 해준다.

 

과연 우리는 온전한 '자유주의' 속에서 살아가는 것인가?

아니면, 그렇게 살아간다고 착각하는 환경 속에 갖힌 것일까?

 

 

우리는 보이지 않는 '선'에 가로막힌 채,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살아가고 있다.

 

 

이 영화는 우리가 눈으로 마주치기를 거부했던 근본적인 문제를 우리 앞에 펼쳐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의지와 상관없이, 우리가 직접 풀어야 하는 숙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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